바보선언 1984
Storyline
절망이 빚어낸 광기 어린 선언: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1980년대 한국 영화사에 한 줄기 섬광처럼 나타나 깊은 울림을 선사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이장호 감독의 1984년작 <바보선언>입니다.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영화를 포기하겠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한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줄거리를 넘어선 파격적인 형식과 은유적인 메시지로 관객과 평단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영화는 한 영화감독(이장호 감독 본인)의 기이한 자살 장면으로 충격적인 막을 엽니다. 그의 시계와 옷을 주워 입고 서울 거리를 헤매는 바보 동칠(김명곤)은 세상의 밑바닥을 떠도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그는 아름다운 여대생 혜영(이보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자동차 정비공 육덕(이희성)과 함께 그녀를 납치하는 황당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립니다. 혜영은 평범한 여대생이 아닌 청량리 588 출신의 매춘부였던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진실과 함께 이들의 기묘한 동행은 시작됩니다. 택시를 잃고 오갈 데 없어진 동칠과 육덕은 혜영이 머무는 창녀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끼니를 때웁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순진한 시골 처녀가 팔려 온 것을 목격하고, 그녀를 탈출시키려다 발각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혜영 또한 이들을 따라나서며 세 바보 같은 이들의 여정은 더욱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낯선 바닷가 휴양지에서 잠시나마 자유와 즐거움을 만끽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적인 온기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혜영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고 동칠과 육덕은 다시 세상에 홀로 남겨집니다.
<바보선언>은 당시 군부 독재 정권의 엄격한 사전 검열 속에서 이장호 감독이 "영화를 망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시나리오 심의가 번번이 반려되자, 감독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즉흥적인 촬영을 감행했고, 이는 영화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어졌습니다. 최소한의 대사, 과장된 몸짓, 무성영화 같은 저속 촬영, 어린아이의 반어적인 내레이션, 그리고 전자오락기 소리, 염불 소리 등 파격적인 사운드 실험까지, 기존 영화의 문법을 파괴하는 시도들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형식적 파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아내는 그릇이 됩니다. 특히 동칠과 육덕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웃통을 벗고 분노의 춤을 추는 장면은 당시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상징하며, 어린아이의 "동칠이와 육덕이 같은 훌륭한 조상들이 계셔서 우리나라가 행복합니다"라는 아이러니한 내레이션은 검열의 눈을 피해 감독이 던진 통렬한 메시지였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괴작"으로 평가되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아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 영화 100선' 중 탑10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바보선언>은 단순히 시대를 기록한 것을 넘어, 예술적 저항과 창의성이 어떻게 불가능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광기 어린 선언, <바보선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며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Details
러닝타임
97분
연령등급
연소자불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주)화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