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line

운명의 판소리, 서러움 위에 피어난 미학

1993년,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한 편이 탄생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단순한 영화를 넘어, 한국인의 '한(恨)'이라는 정서를 판소리라는 전통 예술을 통해 스크린에 오롯이 담아낸 걸작입니다. 당시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최초로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척박했던 한국 영화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이 영화는 개봉 이후 현재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영화는 1960년대 초, 어느 산골 주막에서 한 남자가 들려오는 판소리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떠돌이 소리꾼 유봉(김명곤)은 동호(김규철)의 어머니인 금산댁과 사랑에 빠져 딸 송화(오정해)와 함께 새로운 가족을 이룹니다. 이들은 유랑하며 소리(판소리)를 통해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유봉은 송화에게는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소리를 받쳐주는 북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소리꾼의 운명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금산댁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궁핍한 생활, 그리고 유봉의 혹독한 가르침은 동호로 하여금 가족을 떠나게 만듭니다. 동호가 떠난 후, 송화마저 소리를 포기하고 상심에 잠기자, 유봉은 진정한 소리는 '한'이 맺혀야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렇게 유봉은 송화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을 심어주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소리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는 우연히 들른 주막에서 송화의 소식을 듣고 마침내 대폿집에서 재회합니다. 그들은 어떠한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오직 소리와 북장단으로 서로의 깊은 한과 그리움을 밤새도록 풀어냅니다. 동호의 북장단에 맞춰 송화가 부르는 판소리는 이들의 기구한 운명과 예술에 대한 숙명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관객의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새벽이 밝아오자,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각자의 길을 떠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서편제>는 단순한 가족의 비극을 넘어, 판소리라는 한국 전통 예술의 정수와 그 안에 담긴 '한'의 미학을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임권택 감독은 전라남도 보성 소릿재를 비롯한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5분 30초에 달하는 '진도 아리랑' 롱테이크 장면은 유봉과 송화, 동호 삼부녀가 황톳길을 걷는 모습을 통해 한국인의 고단한 삶과 한을 시각적으로 승화시킨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이 영화는 예술을 향한 인간의 지독한 집념과 운명적인 삶을 관통하는 슬픔, 그리고 그것이 빚어내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 배우의 열연은 물론, 김수철 음악감독의 혼이 담긴 음악은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하며 판소리가 주는 전율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서편제>는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작품상, 제14회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비롯해 수많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서편제>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되새기게 하는 필람 영화입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가슴 깊이 파고드는 예술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잊지 못할 경험에 몸을 맡겨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드라마,사극

개봉일 (Release)

1993-04-10

배우 (Cast)
러닝타임

112분

연령등급

중학생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태흥영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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