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없는 기수 1980
Storyline
"깃발 없는 시대, 길을 잃은 이들의 초상"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모든 펜이 흔들리고, 모든 칼날이 날카롭게 이념을 겨누던 시대에, 한 기자의 양심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요? 임권택 감독의 1980년 작 <깃발없는 기수>는 해방 직후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진실을 좇던 한 지식인의 고뇌와 좌절을 처절하게 그려냅니다.
신문사 사회부 기자 윤은 매일같이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과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거리에서, 과연 무엇을 취재하고 어떤 진실을 보도해야 할지 깊은 혼돈에 빠집니다. 그의 눈앞에는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피를 흘리는 동족의 모습만이 펼쳐질 뿐입니다. 대학 동창들과의 술자리는 이념 논쟁으로 번번이 파국 직전까지 치닫고, 심지어 그가 머무는 하숙집마저 공산주의자인 아버지와 두 자녀 사이의 뿌리 깊은 이념 갈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나 이성적인 판단 없이, 양쪽 정치 세력의 선전에 맹목적으로 휩쓸리는 대중을 목도하며 윤의 번뇌는 깊어집니다. 펜을 통해 세상을 계몽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그의 이상은, 현실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그에게 펜은 더 이상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과 시대의 나약한 상징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윤은 펜을 내던지고, 자신의 손에 차가운 권총 한 자루를 쥐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좌익의 상징적 인물인 이철을 향해 총을 겨눔으로써,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무언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고자 합니다. 한 기자의 이 절박하고 비극적인 선택은, 당시 한국 사회가 겪었던 이념의 광풍 속에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존재론적 고민과 상실감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깃발없는 기수>는 단순히 특정 이념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발버둥 치는 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조명합니다. 하명중, 김영애, 주현, 고두심 등 명배우들의 열연은 혼돈의 시대 속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이 영화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깃발은 과연 진정한 길을 가리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깃발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이 영화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연의 고뇌를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드라마
개봉일 (Release)
1980-09-04
배우 (Cast)
러닝타임
96분
연령등급
국민학생관람불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주)화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