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우는 바람 1997
Storyline
시간의 잔상, 존재의 심연을 더듬다: 영화 <내 안에 우는 바람>
1997년, 한국 영화계에 조용하지만 깊은 파동을 일으킨 한 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수일 감독의 <내 안에 우는 바람>입니다.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일찍이 해외에서 먼저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개념 앞에서 흔들리고, 사색하고,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상업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온 전수일 감독의 작품답게, <내 안에 우는 바람>은 빠르게 휘몰아치는 서사 대신, 삶의 각기 다른 시기를 관통하는 내밀한 '정지'와 '응시'의 미학을 선보입니다.
영화는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라는 삶의 세 단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시간성을 탐구하는 3부작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부 '말에게 물어보렴'은 시간을 알기 위해 집을 나섰다 놀이에 몰두하며 시간을 잊어버린 한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흘러간 시간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어 성장의 흔적을 남기지만, 아이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제2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내 안에 우는 바람'은 자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한 청년의 여정을 그립니다. 그는 꿈과 무의식을 오가며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미 과거의 자신을 해체해 버린 시간의 흐름 앞에서 좌절합니다. 결국, 자신을 찾기 위해 쓰여졌던 모든 기록은 무의미해지고, 불꽃 속으로 사라집니다. 마지막 제3부 '길 위에서의 휴식'은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에 직면한 칠순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아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노인은 다가올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려는 강한 의지로 사진을 찍고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는 집요하게 그를 따라붙고, 노인은 결국 수의를 준비하며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려 합니다.
<내 안에 우는 바람>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는 물리적 사실을 넘어,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의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고 해체되며, 또 무엇을 남기려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전수일 감독은 자전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예술가의 고뇌, 유년의 기억, 그리고 꿈이 어떻게 예술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는지를 영상에 담아내려 시도합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멈춰 세운 듯한 정적인 미장센과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연출은 관객에게 단순한 줄거리 이상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배우 이충인, 박철, 김옥자, 조재현 등 주연 배우들의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 또한 각 인물의 내적 갈등과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이 영화는 템포가 빠른 상업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자 하는 관객이라면 <내 안에 우는 바람>이 선사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경험에 매료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쉽게 잊히지 않을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신 내면의 바람 소리를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드라마
개봉일 (Release)
1997-10-25
배우 (Cast)
러닝타임
110분
연령등급
고등학생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주)동녘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