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line

균열 속 피어나는 붉은 매니큐어: <홍이>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황슬기 감독의 첫 장편 영화 <홍이>는 2024년,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을 수상하고,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평단과 관객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수작입니다. 이어 제4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장선) 수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과 수상을 이어가며,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독립영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0대 후반, 삶의 변곡점에 선 한 여성과 치매에 걸린 노모의 불편한 동거를 통해 우리 시대의 깊은 고민들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이 영화는, 평범한 듯 특별한 모녀의 서사 속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들 것입니다.


영화는 사채 빚에 허덕이는 30대 후반의 ‘홍이’(장선 분)가 치매 초기 증세를 앓는 엄마 ‘서희’(변중희 분)를 요양원에서 데려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언뜻 보기엔 지극한 효심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홍이의 마음속엔 오직 엄마의 통장에 들어있는 돈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사 임용고시에 실패하고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홍이에게, 엄마 서희의 존재는 사랑이나 연민보다는 당장의 현실을 해결할 수단으로 다가옵니다. 홍이는 서희의 돈으로 빚을 갚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며, 죄책감 없이 엄마의 돈을 소비하는 일에 점차 무감각해집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고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받았던 이 모녀의 관계는 미묘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서로의 가장 밑바닥을 마주하고, 숨겨왔던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들 속에서 홍이와 서희는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갑니다. 하지만 홍이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와중에, 서희의 깊어지는 치매 증상은 그녀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영화는 모녀 관계의 복잡한 이면과 더불어, 사회적 안전망에서 소외된 30대 후반 비혼 여성의 고뇌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홍이>는 단순히 치매 노모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황슬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고령화 사회를 앞둔 3, 40대 여성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비정규직 비혼 여성으로서 겪는 경제적, 사회적 고립감을 섬세하게 포착해냈습니다. 영화 속 홍이는 비겁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버티기 위한 그녀만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읽히며 관객들에게 씁쓸한 공감을 선사합니다. 배우 장선은 돈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홍이의 복합적인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해냈으며, 변중희 배우는 치매 증상 속에서도 딸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서희를 강렬하게 연기하며 두 사람의 시너지가 돋보입니다.


<홍이>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우리 사회가 외면하기 쉬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모녀의 갈등을 통해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하게 하며, 관객 각자의 경험과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 혹은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아낸 <홍이>는 관객들에게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솔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2024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홍이>를 통해 당신의 마음속에도 잊지 못할 붉은 매니큐어 자국이 남기를 바랍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드라마

개봉일 (Release)

2025-09-24

배우 (Cast)
러닝타임

86분

연령등급

12세이상관람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주)세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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