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배암 1988
Storyline
"욕망의 굴레, 혹은 독을 품은 꽃: 정지영 감독의 <산배암>"
1980년대 후반 한국 영화계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사회파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정지영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사뭇 이색적인 작품 한 편이 존재합니다. 바로 1988년 개봉작 <산배암>입니다. 멜로/로맨스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계급과 섹슈얼리티가 얽힌 한 여인의 비극적인 서사가 숨 쉬고 있습니다. 정지영 감독이 이후 선보인 사회 비판적 시선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당시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인간 본연의 욕망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이 영화는 오늘날 다시 보아도 여전히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영화는 지리산 화전골의 순박한 여인 탄실(김종아 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산과 들을 누비며 뱀도 잡던 강인하지만 순수한 영혼의 탄실은, 가난한 삶을 벗어나고자 친척의 소개로 서울 안국동의 우만찬 사장 댁에 고용인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는 우사장 부인(김영애 분)을 돌보던 탄실의 삶은,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우사장(남궁원 분)의 등장으로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우사장은 탄실에게 은밀하게 접근하고, 이를 눈치채지 못한 부인은 오히려 남편의 곁을 붙들고자 탄실에게 우사장의 시중을 들도록 강요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결국 우사장과의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된 탄실은 외딴 아파트에 감금되고, 아들을 낳은 후에는 그마저도 부인에게 빼앗긴 채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도시의 냉혹한 욕망 속에서 파괴되는 순수한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거듭하며 '산배암'처럼 독기를 품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깊은 전율을 선사합니다.
<산배암>은 단순히 한 여인의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 1980년대 한국 사회가 품고 있던 계급 갈등, 성(性)의 착취,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도시의 욕망 속에서 어떻게 유린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순수했던 탄실이 점차 세상의 굴레 속에서 변모해가는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파격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가정을 파탄시키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연 김종아 배우의 강렬한 데뷔 연기 또한 이 영화의 백미로 손꼽힙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다소 잊혀졌던 보석 같은 작품 <산배암>.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쓴 강렬한 심리 드라마이자 사회 고발극으로서, 이 영화는 당신의 기억 속에 또 하나의 선명한 족적을 남길 것입니다. 한국 영화사의 한 지점을 이해하고, 인간 본연의 욕망과 비극적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산배암>은 놓쳐서는 안 될 수작입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멜로/로맨스
개봉일 (Release)
1988-08-27
배우 (Cast)
러닝타임
102분
연령등급
연소자불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신한영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