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line

욕망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 '경마장 가는 길'

1991년, 한국 영화계에 한 편의 파격적인 작품이 등장하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입니다. 하일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서사 구조와 파격적인 주제 의식을 선보이며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촉발시켰습니다. 단순한 멜로 드라마의 경계를 넘어, 한 남자의 지독한 욕망과 위선, 그리고 그 속에서 충돌하는 관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파고든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화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문학 박사 R(문성근 분)이 파리에서 동거했던 J(강수연 분)와 서울에서 재회하면서 시작됩니다. R은 재회의 기쁨보다 J와의 섹스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J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프랑스가 아니"라는 J의 말은 R의 광적인 집착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됩니다. 욕구불만에 시달리던 R은 고향 대구로 내려가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내(김보연 분)와 자식들에게서 환멸만을 느낄 뿐입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J와의 섹스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R은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J에게 끈질기게 매달립니다. 그러나 R이 자신이 써준 논문으로 J가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문학평론가로 데뷔했음에도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배신감은 극에 달합니다. J를 비난하면서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R은 결국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J에게 한국을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다시 한번 J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직면하게 됩니다.


장선우 감독은 <경마장 가는 길>을 통해 1990년대 한국 사회에 지식인의 위선과 욕망의 허무함을 날카롭게 던졌습니다. 주인공 R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고 지적인 언어로 포장하려 애쓰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 현실에 무지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너의 이러한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뭐냐?"라는 R의 유명한 대사는 그의 지적 허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당시 유행어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강수연 배우와 문성근 배우는 각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탁월한 앙상블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강수연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춘사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고, 문성근 역시 청룡영화상, 춘사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속 '경마장'은 실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R의 욕망이 반복되고 좌절되는 순환적인 과정을 상징하며, 마치 경마장의 말이 끊임없이 트랙을 도는 것처럼 무의미한 질주를 펼치는 R의 내면을 은유합니다. 기존의 리얼리즘을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봉준호 감독이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로 꼽기도 한 <경마장 가는 길>은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의 4K 디지털 복원 작업을 통해 다시 한번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연출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로 가득 찬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남아있습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드라마,멜로/로맨스

개봉일 (Release)

1991-12-21

배우 (Cast)
러닝타임

138분

연령등급

연소자불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태흥영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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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