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line

광기와 슬픔의 그림자, 폭군 연산의 덧없는 기록

거장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비극적 군주의 초상이 여기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1988년 작 '연산일기'는 단순히 조선왕조 10대 임금 연산군의 치세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내면의 깊은 상처와 결핍으로 인해 어떻게 폭군으로 변모해가는지, 그 비극적인 파멸의 서사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파고듭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이혁수 감독의 영화 '연산군'이 원작에 충실했던 것과 달리, '연산일기'는 이상현 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산군의 모성애 결핍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하여 기존의 연산군 영화들과 궤를 달리합니다.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임권택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어우러져, 역사 속 한 인물의 고뇌와 몰락을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는 영화입니다.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유인촌). 즉위 3개월 만에 접한 생모 폐비 윤씨에 대한 기록은 그의 본능적인 모성 욕구를 자극하며 깊은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군주로서의 위상과 의무, 그리고 폐비된 어머니에 대한 효 사이에서 방황하던 연산은 즉위 4년 무오사화를 겪으며 내면의 고뇌에 더욱 시달리게 됩니다. 모성에 대한 억압된 욕구는 그의 내면을 지배하는 의식이 되어, 장녹수(김진아)를 비롯한 총녀들에게 편애로 표출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정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폭정은 극에 달하며 결국 즉위 10년 만에 갑자사화라는 피의 참화를 불러옵니다. 황폐해진 왕권을 바로잡고자 하는 대신들에 의해 진성대군(이경영)이 새로운 왕으로 옹립되고, 연산은 파란만장했던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하게 됩니다.


'연산일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폭군의 광기를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자리한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를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임권택 감독은 연산군의 내면적 갈등을 섬세하고도 압도적인 미장센으로 그려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연산이라는 인물에 대한 복합적인 시각을 갖게 합니다. 특히 연산군 역을 맡은 유인촌 배우의 연기는 단연 압권입니다. 그는 기존 연산군 역의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와 달리, 섬세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연산의 면모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그 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김진아 배우의 장녹수 또한 연산의 광기를 부추기는 욕망의 화신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1987년 제26회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기획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권력과 인간 심리의 깊이를 탐구하고자 하는 관객,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수작입니다. 비극적 운명 속에 피어난 한 인간의 광기 어린 기록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연산일기'를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Details

감독 (Director)

장르 (Genre)

사극

개봉일 (Release)

1988-02-18

배우 (Cast)
러닝타임

118분

연령등급

연소자불가

제작국가

한국

제작/배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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